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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포스기 금학동 카드단말기 신관동 무선카드기 결제기 카드기 결제시스템 임대 렌탈 대여 비용 문의

by 쿠쿠르쌤 2024.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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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전통적인 도내 주요 도시였지만(전라도의 '라'가 바로 나주, 경상도의 '상'이 바로 상주), 바로 옆에 근현대에 새로운 대도시가 성장해 쇠퇴한 경우에 해당된다 

대동강을 낀 평양시, 한강을 낀 서울특별시 등은 모두 대도시로 성장했지만, 정작 공주시는 충청도 최대의 강인 금강을 끼고도 오히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촌구석이었던 대전에게 밀려버렸다 

지질 구조가 복잡하며 단층도 지나간다 

곰나루(고마 나루)에 얽힌 전설이 있다 [9]

면적이 충청남도에서 가장 넓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경부선이 공주를 경유하지 않기에 공주가 발전이 더뎠다고 단정하고 피해의식을 가지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루는 암컷 곰이 남자를 가둔 굴을 실수로 바위로 막아 놓지 않았는데,[10]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남자가 도망가자 암곰은 매우 슬퍼하며 아이들을 끌어안고 금강 물에 뛰어들어 자살했다고 한다 

"구한말 일본이 경부선을 건설할 때 공주를 경유하도록 돌아가려고 했으나, 양반 및 유생들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호남선마저 피해가서 대신 한낱 시골동네에 불과했던 대전이 어부지리로 급성장했다"라는 유생 반대설이 널리 퍼져있다  다만 당신과 내가 벗이 되기를 바랍니다  공주의 '公(공)'은 '곰'을 한자로 음차한 것이다  동으로는 세종특별자치시, 동남으로는 대전광역시와 계룡시, 서로는 청양군, 남으로는 논산시와 부여군, 북으로는 천안시와 아산시, 예산군에 접한다 " 라고 말했다  당장 공주시가 나주시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차령산맥이 지나가며, 그러다보니 시 서쪽은 산이 많으며 그 사이를 흐르는 하천들을 따라 좁은 평지들이 형성되어 있다  20세기 중반 이후로 대전, 천안, 청주 등 주변 도시들이 급성장하고,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까지 출범하면서 도시의 규모와 영향력 면에서는 충청권 도시들 중에서도 많이 빛바랜 수준으로 물러났다 

지명 유래에 따라 공주시의 마스코트도 곰을 쓰고 있다 [12] 즉 철도가 경유했든 말든 공주시가 근대화 과정에서 중심지의 지위를 잃고 쇠락한 건, 근본적으로 근현대 도시로 적절하지 않은 입지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숙명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특기할 만한 반대 운동은 없었고 애당초 일본 제국은 그런 걸 그리 신경 쓰지도 않았다  원도심 역시 월성산과 일락산 사이에 있는 좁은 평지에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시가지가 확장되기 어려우며, 따라서 금강 건너 신관동에 신시가지가 지어졌다 

전근대에 공주가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평지가 없는 대신 강변 수심이 깊어 도강하는 나루터로서 적합하여, 이 나루터를 활용해 금강 수운의 최대 교두보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곰은 남자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남자도 처음에는 곰을 두려워하였으나 곰의 친절에 점점 감화되었다  이 곰은 혼자였기에 늘 외로웠고, 항상 자신과 함께 있어줄 이를 소망하였다  허나 철도와 자동차의 발전을 필두로 강을 통한 수운이 사라지면서 공주시가 가진 교통상 이점이 사라졌고, 되려 큰 평지가 없는 입지환경이 인구유입과 도시개발에 장애물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 외 우성면, 의당면에 평지가 어느 정도 있어 금강 북쪽은 분지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호남선이 들어선 나주시가 쇠락한 것을 봐도 철도는 공주시의 쇠락과 연관성이 적다  하지만 곰은 기껏 데려온 남자를 잃고 싶지 않았다 [17]그럼에도 불구하고 1896년 전라남도청이 광주로 이전함에 따라 나주는 호남 중심지의 지위를 광주에 뺏겼고, 그나마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야할 호남선은 2003년 말 완전히 복선화가 되기 전까지 단선으로 운행되었으며, 철도청이 경부선을 중시하느라 다른 노선에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나주는 호남선 철도가 통해도 오히려 쇠락하였다  즉, 지명으로 쓰일 때 '공주'의 '공(公)'은 '곰'에 해당하는 음가로 읽었다는 것이다 

남자는 곰이 사람의 말을 하는 것에 짐짓 놀라면서도 두려움 탓에 곰의 부탁을 거부하였다 

신라의 삼국 통일과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웅천주(熊川州, 웅주)로 개칭되었다가[11] 조선시대 이후로는 쭉 공주라 불렸다 

비슷하게 주요 간선철도가 비켜간 도청소재지였던 청주, 전주, 해주, 광주, 춘천은 적절한 타이밍에 사설철도가 공급되어 도청소재지 지위를 지켜낼 동안 유독 공주만 청주와 개싸움 벌여 간신히 관철시킨 사철 부설계획마저 무산된 것을 보면 입지조건에 따른 차이는 명확하다  전근대 시대 공주-곰나루는 분명 하삼도와 한양을 잇는 물류이동의 중심지였다  사실 경부선을 비롯한 간선 철도가 경유함에도 발전 못 한 지역도 있고(조치원읍, 옥천군, 영동군, 김천시, 칠곡군, 청도군, 밀양시[13], 논산시, 익산시[14], 김제시, 정읍시, 장성군, 나주시 등), 빗겨 나갔음에도 대도시로 성장한 지역(울산광역시, 광주광역시[15], 창원시, 청주시)[16]도 있기 때문에 철도 경유의 문제로만 간단히 정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공주시는 시가지(동 지역) 인구가 시 승격 기준인 50,000명 이상은 유지하고 있는 데 반해(2021년 기준 59,763명), 나주시는 시가지 인구가 30,000명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비슷한 특징을 가진 도시로는 전라남도의 나주시, 경상북도의 상주시가 있다 

이후 암컷 곰은 인간 남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여럿 낳았다  이로 인해 지진도 발생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곰은 남자 몇 명이 금강을 건너와 물고기를 잡고 나무를 베어 배에 싣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곰은 기절한 남자를 자신의 동굴로 데려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이러한 공주시의 철도 유치 노력과 수난사에 대해서는 공주시/교통 문서에 자세히 나와있다 

곰이 그들에게 다가가자 남자들은 혼비백산해 도망쳤으나, 그중 한 명은 너무 놀라 그만 기절해 버렸다  옛날에는 '공주'라 쓰고 '곰주'라고 읽었다  훗날 이 전설에 따라 그곳은 '곰나루', 한자로는 '웅진(熊津)'이라 했으니 오늘날 공주의 기원이다  수계상으로는 전역이 금강 수계이긴 하지만 거의 모든 지역이 금강 본류에 합류하는 수계인 것과는 달리 계룡면 남부 지역은 논산천으로 먼저 합류되어 관내 다른 지역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남자가 깨어나자, 곰은 "나는 당신을 해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과거 백제 시절, 연미산에 사람의 말을 하는 암컷 곰이 있었다  사실 경부선 건설 시 공주를 경유하려 했던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러일전쟁 준비로 속전속결이 대두되며 제외된 것이다 충청남도의 시  이후 호남선 공주 분기안, 충북선 공주 연장계획, 경부복선 공주 경유 등 공주를 철도로 이어보려는 노력이 일제 시대 내내 있었지만, 시대적 상황과 공주의 자연환경 등으로 인해 번번히 좌절되었다  그리고 산으로 둘러싸인 고을이기에 조선시대까지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전근대 전남지역의 중심지로 기능했던 나주에는 호남선이 경유하는데 반해, 광주광역시는 호남선이 10km 이상 떨어진 송정리로 빗겨 나갔다  오히려 계룡면부터 평지가 형성되면서 남쪽 논산시로 연결되는 구조  그래서 곰은 한동안 남자에게 먹을 것을 주면서, 사냥을 나갈 때면 동굴 입구를 큰 바위로 막아 가두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