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군 근남면과 울진읍. 나는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한 지 17년이 됐다. 관광객도 오고, 단골도 많다. 맛 하나로 버텼고, 정성으로 장사했다. 그런데 17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깨달은 게 있다. 내가 하루에 몇 번씩 되풀이하던 일들이, 사실은 안 해도 되는 일이었다는 것.
예를 들면, 주문을 종이에 적고 나중에 다시 옮겨 적고, 손님한테 메뉴 설명을 세 번이나 반복하고, 계산할 때마다 카드 단말기 승인 기다리느라 카운터 앞에 줄이 생기고. 배달앱은 휴대폰으로만 확인하고, 그걸 또 손으로 POS에 옮기고, 밤에는 매출 정리하면서 계산기 두드리고.
이게 장사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 단순한 이유로 키오스크를 들이게 됐다. 자주 오는 대학생 손님이 농담처럼 말한 한마디 때문이었다. “사장님, 여긴 2005년 감성이 살아 있네요.” 웃었지만, 꽤 오래 찔렸다.
설치하고 나서 바로 느꼈다. 내 목소리가 줄었다. 메뉴 설명 줄고, 계산 실수도 줄고, 점심시간에만 몰리던 손님이 분산되기 시작했다. 포스기도 바꿨다. 처음엔 겁났다. ‘이런 거 쓸 줄도 모르는데 괜히 돈만 버리는 거 아냐?’ 그런데 막상 써보니 하루 마감이 20분 안에 끝난다. 이전엔 서서 40분, 허리 굽히고 계산기 두드리던 걸 이제는 앉아서 버튼 몇 번이면 끝이다.
무선단말기는 신의 한 수였다. 손님이 자리에서 결제하고 나가니까 테이블 회전이 부드러워졌다. 그동안 ‘계산하세요’라는 말 한마디에 허둥대며 계산대까지 오시던 어르신들도 편해졌다. 카드단말기도 최신형으로 바꾸니 애플페이, 삼성페이 되는 젊은 손님이 확실히 늘었다. 예전엔 "안 돼요"라고 대답하던 순간들이 지금은 "네, 됩니다"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차이가 손님 표정에서 보인다.
나는 기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아직도 복잡한 건 질색이다. 그런데 이 시스템들이 내 장사에서 하나씩 자리를 잡으면서, 내 하루가 조금씩 정돈되기 시작했다. 마감 시간이 줄고, 계산 실수가 사라지고, 손님이 머뭇거리는 시간이 줄었다. 결국 장사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했다. 손님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여유, 그게 생긴 거다.
근남면도 울진읍도 아직 조용한 골목이 많다. 그래서 손님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내가 매일 똑같은 실수로 손님을 놓치고 있었다는 걸, 오래 지나서야 알았다.
지금은 누가 물어보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기계는 장사를 대신해주진 않아요. 근데 장사를 망치지 않게는 해줘요.” 그리고 그거면, 충분하다고.